나이 듦에 대한 단상

2026. 4. 25. 10:32창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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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내 나이 오십.

만으로 마흔여덟.

어느덧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냈다.

 

행복을 위해서는 하면 안 되는 짓이지만,

남들과 비교해 봤을 때 정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집은 당연히 없고, 모아 놓은 돈도 없다. 결혼도 하지 못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 못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반반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주변에서 '역시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느낌을 주는 사례를 찾기 힘든 이유도 있고,

하찮은 내 경제력을 생각해 볼 때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면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피곤해졌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무엇보다도 혼자 사는 거... 이거 꽤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내 집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하나도 없다.

내가 조용한 환경을 원하면 그렇게 되고, 추우면 보일러를 켜고, 더우면 냉방을 하고,

먹고 싶은 걸 해 먹거나 시켜 먹을 수 있고, 책을 읽고 싶을 때 방해 없이 읽을 수 있다.

한겨울에도 속옷 차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함께 살며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보다 혼자 있는 외로움과 고독이 더 크다면,

그런 사람은 결혼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대화도 통하지 않고, 가치관도 크게 다르고, 서로 믿지 못하는 상대와 함께 산다면...

그건 지옥이겠지.

실패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할 것 같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젊은 시절에는 이런 것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호르몬의 막강한 영향력이 냉철한 판단을 가리는 시절이기에...

 

나도 그랬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상대방의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설사 몇 개 보이더라도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콩깍지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외면한다.

그건 생각보다 매우 짧다.

 

나이가 드니 예전과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어딜 베이고 긁혀도 회복에 더 시간이 들고,

그 많던 아침잠도 사라져 조금 늦게 잠든 날에도 이른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구부정하게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인과응보로 목과 어깨, 때로는 허리에 자주 통증이 생긴다.

유튜브를 찾아보며 신전 동작을 따라하고 척추 위생에 신경을 쓰게 된다.

튀긴 음식과 패스트푸드를 예전만큼 찾지 않게 되고, 어쩌다 한 번씩 먹더라도 죄책감이 앞선다.

 

부모님이 부쩍 늙어 보이기 시작한다.

부모님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제 나와 부모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마음은 아직 열여덟 살 그때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거울 속의 나는 그걸 강력하게 부정한다.

 

그렇다고 나이 드는 것에 꼭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는 경험이 지혜와 통찰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나이쯤 되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구분은 이미 명확해진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반려자와 이혼을 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오래된 친구들조차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고, 한순간에 손절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좌절할 만한 일도 아니다.

모든 선택의 기준을 내 삶의 평화와 괴로움을 덜기 위함으로 삼으면 다 아무것도 아니다.

 

남의 시선도 어린 시절보다는 덜 신경 쓰게 된다.

뭔가 대단해 보이던 사람들도 알고 나면 별것 없음을 알게 된다.

늘 주눅 들어 살았던 젊은 시절의 내가 이제 와서는 바보같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감만 높았었다.

이제는 남은 삶에 대한 희망은 갖되, 기대감은 버린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만큼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걸 느낀다.

그 와중에 내가 바라는 것만큼 남을 대하고, 내가 남을 대하는 것만큼 남이 날 대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게 안 되는 사람은 그저 흘려보낸다.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간다.

나도 너도 모두다 더 늙어 갈 것이다.

언젠가는 세상과 작별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장례식에 누가 와줄지를 신경 쓰기도 한다.

웃기는 일이다.

이미 죽었는데 누가 오든 말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이를 먹고 나서야 읽게 된 도킨스와 칼 세이건은,

죽음을 삶의 실패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이는 데 꽤 도움이 됐다.

종교가 없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저... 죽기 전까지 내 몸을 남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게.

꾸준히 운동을 하고, 나쁜 것을 좀 덜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겠다.

 

"뭐... 그런 거지."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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